횡단보도 경사석,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겐 벽
도로((道路)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가장 오래된 도로는 로마제국이 유럽 전역에 도로망을 설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길은 있었다.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던 길에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신작로는 자동차 산업의 발달로 날로 발전하여 거미줄 같은 전국망이 개설되었고 세계 망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길은 사람을 위한 것인데 요즘은 자동차를 위한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길은 사통팔달로 뚫려 있어 가고자 하면 못 갈 곳이 없다. 그러나 모든 길은 자동차 우선이고 그리고 비장애인 우선이다. 모든 길에는 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따로 구분되어 있어서
차는 차끼리 좌회전 또는 우회전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사람은 반드시 횡단보도로 건너가야 한다고 [도로교통법]에 명시되어 있다.
도심에서 길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횡단보도가 있다. 그런데 그 횡단보도도 비장애인을 위한 것이었으나 요즘에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되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조(편의시설의 세부기준)에 의하면 (1) 접근로의 기울기는 1/18 이하
(다만, 지형상 곤란한 경우 1/12까지 완화), (2) 대지 내를 연결하는 주접근로에 단차 높이 2센티미터 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법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건물은 거의 다 15cm 이상의 계단으로 설치되어 있고 평지로 연결된 접근로도 대부분이 2cm 이상이다.
그냥 평지로 연결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단차를 만드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그런데 다른 곳은 그렇다 치고, 횡단보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횡단보도(橫斷步道)란 사람이 이쪽 인도(人道)에서 차도(車道)를 횡단하여 저쪽 인도로 건너가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횡단보도는 빨간 신호가 켜지면 차들이 지나가고, 반대로 초록 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간다.
횡단보도 끝부분 차도와 인도 사이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가로 20cm 높이 20cm 길이 100cm의 경계석이 놓여 있다. 횡단보도에서 인도로 가려면 그 경계석을 넘어가야 한다.
필자도 휠체어를 사용하지는 않으므로 횡단보도의 경계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어느 장애인이 횡단보도를 건널라치면 휠체어 바퀴가 경계석에 자꾸 걸린다고 했다.
그때는 필자도 잘 몰라서 나중에 알아보겠다고 했다.
나중에 횡단보도 경계석을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경계석 절반이 차도 방향으로 비스듬히 깎여 있었다. 그제야 얼마 전에 장애인권익운동가 조봉현 씨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조봉현 씨에게 전화를 했다.
조봉현 씨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인데 부산에 살지 않는다. 한 번씩 부산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횡단보도 경계석이 규정에서 정한 기울기 1/12을 넘어가므로 휠체어 바퀴가 자꾸 걸린다는 것이다.
조봉현 씨는 여러 지방을 다녀보았는데 이 같은 경계석은 유독 부산에만 있다고 했다. 다른 지방은 다 평면인데 경사로 경계석은 부산역을 비롯하여 서면 중앙동 해운대 등 부산 전역에 있다고 했다.
조봉현 씨에게 다른 지방의 평평한 경계석 사진이 있으면 좀 보내 달라고 했다.
부산역 앞에 횡단보도가 두 군데가 있는데 부산역에서 왼쪽과 오른쪽에 있다.
대부분의 경계석이 20cm의 경사석인데 왼쪽의 횡단보도는 경계석은 20cm의 경사석인데 오른쪽의 경계석은 20cm의 경사석이 아니라 38cm의 평면석이었다.
물론 가운데 BRT 노선의 20cm 경사석은 그대로지만 양쪽에는 38cm 평면의 경계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산역 왼쪽은 20cm 경사석으로 되어 있다. 필자가 한참을 왼쪽 횡단보도를 지켜보았더니 그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두어 명 만났다.
그리고 부산역 앞이다 보니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은 더러 만났다.
캐리어를 끌고 가고 오는 여행객은 대부분이 경사석 앞에서 한 번씩 걸렸는데 경사석 때문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 하고 뒤로 한번 밀었다가 다시 고쳐서 지나갔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나 캐리어가 걸리는 여행객 등에게 사진 한 장 찍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부산역 인근에 있는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전현숙 사무처장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안성태 국장을 연결해 주었다.
부산역 왼쪽 횡단보도 앞에서 안성태 국장을 만났다. 안성태 국장이 자기도 이 길을 이용하는 데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어째서일까? 자기는 사무실이 근처라 가끔은 이 길을 이용하는데 자기는 경사석을 이미 알고 있기에 경사석 앞에 오면 휠체어의 앞바퀴를 들고 조심해서 건넌다는 것이다.
“저 같은 경우는 이미 알고 있기에 큰 문제가 아니지만 처음 접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심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조봉현 씨는 휠체어로 부산 시내 곳곳을 다니다 보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설치된 경계석의 곡각 부분과 심한 기울기로 인해 휠체어가 크게 요동을 친다고 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했다.
휠체어가 다니는데 불편한 길은 유아차나 노인들의 보행보조기구인 실버카가 이동하는 데도 불편하다.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법정 규격에도 어긋나는 시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사석 경계석이 유독 부산에만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횡단보도의 일반적 형태는 차도와 수평으로 경계석을 묻고 연결되는 진입로의 보도블록은 경사형으로 시공한다.
그 경사로의 법정 기울기 한도인 1/12을 각도로 환산하면 4.8도다. 따라서 휠체어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 각도는 4.8도 이내여야 한다.
그리고 꺾이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돼야 한다. 부산을 제외한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는 이러한 기준은 준수되고 있다고 한다.
조봉현 씨는 부산 시내 횡단보도에서 경사석 경계석을 여러 군데 만나면서 각도기로 재 보았는데 대부분의 경사면이 12도가 넘고 어떤 곳은 17.6도까지 나왔다고 했다.
12도면 법정 각도의 2.5배이고 17.6도는 3.6배가 넘어서 모두 불법시설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계석을 깎아서 가공했다면 일반적인 방식보다는 공사비도 훨씬 더 들었을 텐데 공사비를 일부러 더 들여서까지 법에도 어긋나는 시설을 왜 했을까.
그래서 부산시에 알아보려고 했는데 연결이 잘되지 않았다고 필자에게 좀 알아보라고 했다.
필자가 부산시에 문의를 했다. 도시계획과라고 했는데 횡단보도에 왜 이런 경사석 경계석을 설치하는지를 물었더니 장애인 편의시설에 턱이 2cm 이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모따기 경계석을 말하는 것 같은데 조달청에서 납품받았다고 했다.
부산역에는 횡단보도가 두 군데인데 부산역에서 오른쪽에는 경계석이 넓고 평평한데 왼쪽은 좁은 경사석이라고 했더니, 동구청으로 알아보라고 했다.
동구청 건설과 담당자와 몇 번이나 통화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횡단보도 경계석의 경사석은 보행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리고 조달청의 경사석은 쇼핑몰 같은 거라고 했다. 여러 가지 경계석 중에서 시행처에서 고른 거 같다고 했다.
조달청에 이 같은 경사석을 주문하거나 발주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더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경계석 관련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있어서 필자가 몇 군데 연락해 보았는데 부산의 횡단보도 같은 경사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조봉현 씨는 법에도 맞지 않고 장애인에게 불편한 횡단보도 경사석 경계석이 전국으로 퍼져 나갈까 봐 염려된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횡단보도 경계석의 경사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 당국에서도 보다 나은 방법을 찾지 않을까,
동구청에서도 새로 시설하는 횡단보도 경계석은 부산역의 오른쪽 횡단보도 경계석처럼 넓고 평평한 경계석으로 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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