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긴 야구경기 관람기-①
지난 8월 22일 저녁, 친구 현균과 함께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도림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이날은 현균이 걷기 운동을 하는 날이라기에 나도 따라 걸었다. 한낮의 무더위와 장맛비 그리고 밤에는 혼자 운동하기 무섭다는 핑계로 3주 가량 중단했던 걷기 운동을 나도 이제 막 다시 시작하려던 시기였다.
현균은 지난 5월부터 달리기와 걷기를 병행하며 체력을 다지고 있다. 이날은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카페에서 현균과 함께 하루 앞으로 다가온 다/함께/사/세 커뮤니티 성과공유회를 준비했다.
다/함께/사/세 커뮤니티 1회차부터 8회차까지의 활동기록을 담은 책에다가 모임원들에게 편지도 썼다. 현균과 나는 4월 서울청년센터 금천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날은 8회차까지의 정규모임을 마치고 후속모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쯤에서 다/함께/사/세 모임원을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뇌병변장애로 인해 움직임에 불편함을 겪는 준희, 시각장애로 인해 앞을 보는 일이 어려운 성규와 동우, 허리디스크로 장시간 걷는 일에 불편함을 겪는 비장애인 우현, 안경을 써야만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은 비장애인 현균, 그리고 발달장애로 인해 사회적으로 느린학습자라는 별명이 붙은 나, 유리이다. 4편으로 나누어 연재 예정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긴 야구경기 관람기"는 바로 이 6명의 모임원들의 이야기이다.
현균은 나와 함께 도림천을 걸으며 걱정 하나를 말했다. 일주일 뒤 다/함께/사/세 커뮤니티 활동으로 예정되어 있는 고척스카이돔 방문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 날 나와 준희가 다른 모임원들보다 가장 먼저 고척스카이돔에 도착하게 될텐데, 나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준희는 걷는게 불편해서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현균의 고민을 들으니, 나도 슬슬 걱정이 되었다. 잠실야구장에는 가봤다. 2010년, 2015년, 2018년, 딱 세번 가봤다. 전국에 야구장이 많다고 하지만 태어나 잠실야구장만 세 번 가본 것이 끝이다. 고척스카이돔이 아닌 잠실야구장에 간다고 했어도 어디로 입장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갔던 게 5년이 넘었고, 다른 분들 뒤를 쫒아만 갔었기 때문이다.
준희는 고척스카이돔에서 우리가 예매한 좌석까지 찾아가는 길을 잘 알까? 만일 준희도 잘 모른다고 하면, 길을 해메서 뺑뺑 돌아가면 준희가 힘들어서 어쩌지? 와 같은 걱정이었다. 준희가 넘어지려고 하면,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붙잡아줘야 하나? 넘어지면 어떻게 일으켜 세워야 하지? 라는 걱정도 있었다.
8년 전 쯤, 모임에서 넘어질려고 하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모임원을 붙잡다가 나도 중심을 잃어 함께 넘어진 기억 때문이었다. 만일 나와 준희만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둘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잘 몰라 걱정이 많았다.
이틀 후 현균에게서 연락이 왔다. 준희와 내가 구일역 2번출구에서 만나는 시간을 정하면, 자신이 최대한 그 시간에 맞춰보겠다고 했다. 고척스카이돔은 구일역 2번출구에서 가깝다. 내 퇴근 시간은 오후 3시이다. 현균이 내 시간에 맞춰보겠다는 것은 자신의 일정을 일찍 마치고 온다는 뜻으로 추측되었다.
내가 야구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미안해졌다. 내가 전국 야구장을 다 돌아보는 야구 광팬이였다면 고척스카이돔에서 우리가 예매한 좌석까지 입장하는 일 쯤은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음 날 준희와 카톡을 했다. 구일역 2번출구 앞에서 몇 시에 만날지 약속을 잡으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준희는 고척스카이돔을 혼자서 가본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야구장에서 우리가 앉을 좌석을 찾아가는 법을 모른다고 하니, 자신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서울청년센터 금천을 통해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하는 키움과 롯데 경기를 온라인으로 예매해 둔 상태였다. 준희와는 오후 4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야구 경기 시작 시간 전까지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 가 있기로 했다. 나는 적어도 우리가 예매한 좌석까지 가는 길을 해매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준희가 넘어지려고 하면 어떻게 붙잡아야 둘 다 넘어지지 않을까’ 라는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준희와 대화를 마친 후 현균에게 카톡을 보냈다. 둘이서 잘 놀고 있을테니, 서두르지 말고 너와 성규의 도착 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했다. 현균은 성규와 함께 오기로 했다. 성규와 현균이 고척스카이돔에 도착하면 오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가 될 것이다. 다른 모임원들도 비슷한 시각에 도착할 것이다. 2시간동안 준희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지난 모임에서는 롯데콘서트홀에 다녀왔는데 그때는 준희와 1시간 정도 롯데콘서트홀 근처 카페에 있었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1시간 동안 준희와 대화를 잘 하지 못했다.
취업 고민도 들어주지 못했다. 긴 침묵과 짧은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번에도 그럴까봐 걱정이 되었다. 현균이와 단 둘이 있어도 긴 침묵이 이어질 때도 많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다. 아무래도 7년째 인연을 맺어온 현균과는 많이 친해져서 그런것 같다. 이번 기회에 준희와도 친해지고 싶었다.
8월 30일, 다/함께/사/세 모임원들과 다같이 야구장에 가는 날이 되었다. 일주일 전과 달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저만 믿고 따라오시죠.”라는 준희의 카카오톡 대화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후 4시 30분 준희와 구일역 2번출구에서 만났다. 나는 준희를 보자마자 “준희님, 길 안내 해 주세요. 저 고척스카이돔 주변 길 하나도 몰라요” 라고 말했다. 준희의 “가요.”라는 소리에 나는 습관처럼 계단을 향했다.
두 세 계단 내려 갔을까? 뒤따라 올거라 생각하던 준희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방금 전에 준희를 봤었는데, 혹시 준희가 아직 안 왔는데 왔다고 착각을 했던 것일까? 내 기억력을 걱정하며 계단을 다시 올라가 역사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앞에 준희가 있었다.
준희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미안한건 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야 된다는 걸 깜빡했어요. 저도 모르게 계단으로 갔네요.” 앞으로는 준희보다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찾아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준희는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 이용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고척스카이돔은 구일역 2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일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대로 쭉 직진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2번 출구가 아닌 다른 출구로 나오면, 고척스카이돔으로 가기 위해서 고난의 시간과 마주해야 한다고 한다. 계단도 많고 길도 울퉁불퉁하며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한다고 했다. 이 사실은 모임을 마친 후 우현으로부터 들어서 알게 되었다.
우현은 퇴근시간이 늦어 경기 시작 후에 구일역에 도착했다. 2번출구가 아닌 다른 출구로 잘못 나왔는데, 많은 인파로 인해 여기가 맞는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에 휩쓸려 나왔다고 한다.
고척스카이돔으로 가려면 2번출구로 가야 한다는 안내지가 붙어 있었지만, 안내지를 보면서도 도저히 역사 안을 가로질러서 반대편 출구로 갈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우현은 ‘다른 출구로 나가도 고척스카이돔으로 금방 갈 수 있겠지.’하고 그냥 나왔지만,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계단이 엄청 많았고 다리도 건너야 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 올라가는 길이 굉장히 울퉁불퉁했고, 경사로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우현은 ‘이 경로로 가면 빠르고 편하게 경사로로 갈 수 있어요.’라는 안내 표시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말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구일역 2번출구가 아닌 1번출구로 나왔을 때 고척스카이돔으로 가는 방법이 적힌 블로그 포스팅은 찾아볼 수 있었지만, 경사로를 통해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적힌 글은 없었다.
국민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다. 장애인이라고 집에서만 생활할거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 편하다는 말이 있다. 구일역 2번출구가 아닌 1번출구로 나왔을 때 빠르고 편하게 경사로를 통해 고척스카이돔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도 공유되었으면 한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임에도 구일역에는 야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아 역사를 빠져나와 고척스카이돔까지 가는 일에 크게 애를 먹지 않았다. 나와 준희는 경기 시작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사람들에 치어 오도가도 못하는 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야구 경기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야구장 내부를 한번 쓱 둘러보고 근처 카페에 가 있기로 했다. 고척스카이돔 내부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준희를 뒤따라갔다. 나도 현균처럼 달리기와 걷기 운동을 병행한지 한달이 조금 넘어 빨리 걷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준희를 앞장 세우고 준희의 발걸음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움직였다. 내가 길안내를 받아야 할 입장이였기에 준희를 앞지를 수 없었다.
고척돔이 눈 앞에 보여서 구일역 2번출구로 나오면 고척돔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바로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야 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계단도 많았다. 준희는 나를 계단으로 안내했다. 구일역에선 엘레베이터를 타던 그였는데, 굳이 힘들게 계단을 이용하는 게 의아했다.
“준희님, 여기 엘리베이터 어디 있어요? 우리 엘리베이터 타고 가요.”
“엘리베이터까지 가기가 멀어서요. 계단으로 가야 오히려 덜 걸어요.”
나는 ‘괜히 야구장 내부를 구경시켜 달라고 했나’라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고척스카이돔에 들르지 않고 바로 카페로 갔다면 이렇게 많이 걷지 않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길을 잘못 안내해서 준희처럼 뇌병변장애로 다리가 불편한 지인을 많이 걷게 했던 일이 생각났다. 카페로 바로 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많이 걸은 후였다.
;준희가 많이 걸어서 힘들어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을 많이 걸어다니게 하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 ‘불편한 다리로 많이 걸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다리에 피로가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노파심에서다. 준희가 너무 많이 걸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준희가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편견 말이다.
준희는 바깥 구경을 좋아하고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기를 즐겨한다는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있다. 준희가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때 많이 놀랐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준희가 많이 걸어다니는 모습을 아직까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준희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자신의 걸음걸이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불안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나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이 걸어도 되느냐?”는 걱정스러운 질문을 받은 적이 종종 있다. 그럴때면 나도 그만큼의 거리는 걸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나만의 걸음걸이와 속도로 가는 것 뿐인데 사람들이 왜 나를 걱정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준희가 걷는 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걱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필요 이상의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준희는 다른 사람이 도와주려고 할 때 도움이 필요없는 경우라면 “괜찮아요.”라고 하고, 만약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준희가 먼저 도움을 요청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준희가 나와 다닐 때 도움을 요청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있었다면 준희가 먼저 도움을 요청했을텐데,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중증의 뇌병변장애인은 보행 시 항상 도움이 필요할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나보다.
카페는 고척스카이돔 앞 횡단보도 건너편에 많이 있었다. 고척스카이돔 내부를 구경하러 가든, 카페로 바로 가든 고척스카이돔을 지나서 가야 했다. 고척스카이돔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경기장 내부 구경은 하지 않고 바로 카페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경기가 시작되면 야구장 안을 실컷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별로 아쉽지 않았다.
준희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고척스카이돔 근처에 배스킨라빈스가 있는지 한번 검색해 봐달라고 했다. 네이버지도앱 길찾기에서 출발 지점에 내 위치를 찍고 도착지로 상호명을 검색했다. 관련도순, 거리순 중에서 거리순을 선택했다. 거리순을 선택하면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알려준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거리순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배스킨라빈스는 6.8km에 달하는 거리에 있었다.
“준희님, 배스킨라빈스는 이 근처에 없어요. 다른 데 가야 될 것 같아요. 다른 카페 있을까요?”
준희는 배스킨라빈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던 것인지 벤치에서 일어나 앞장섰다. 준희는 지도앱을 계속 살펴보고 있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유리님, 핸드폰 넣으세요. 저만 믿으세요.”
2부에서는 야구 경기 시작 전까지 준희와 함께 배스킨라빈스와 롯데리아에서 시간을 보내고, 고척스카이돔으로 이동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이 글은 김유리 님이 다/함께/사/세 모임원들과 함께 작성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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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유리 uri2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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