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장애인 편의시설, 완벽하지 않으면 ‘무용지물’
한국장애인개발원이 관리하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는 굴지의 장애 유형별 중앙단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필자가 화장실 잠금장치에 점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거의 이십 년을 이용한 시설이었는데, 잠금장치에 점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발견했다. 그냥 화장실에 들어가면 잠금장치를 돌려서 문을 잠그고 그 옆을 일일이 만져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위치만 눈으로 보지 자세하게 볼 필요도 없었기에 점자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편의시설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가 이런 사실을 무심코 지나쳤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무엇이든 조금 더 많이 더듬어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자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는 화장실은 이룸센터 1층 남성비장애인화장실의 대변기가 있는 칸이다. 시각장애인 단체가 6층에 있으니 1층을 이용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1층 커피숍이나 이룸센터 방문 시 이 화장실을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가능성은 충분했을 것인데, 다른 시각장애인들도 전혀 점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내왔을까?
손으로 점자가 있다는 위치나 점자가 있는지의 여부를 알려면 모든 벽을 더듬을 수는 없다. 보통 점자안내판은 1.5미터의 높이에 출입문의 우측이나 좌측 열리는 손잡이가 있는 방향의 벽에 있다. 그러므로 늘 있는 위치에 점자가 있는지 만져볼 수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손끝을 대어 보았다가 점자가 만져지지 않으면 바로 점자안내판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혹시 다른 곳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 벽을 다 더듬어 보지는 않을 것이다.
지하철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곳이 많은데, 스크린도어 문이 열리는 양쪽에 그 문의 번호와 지하철이 가는 방향이 점자로 적혀 있다. 혹 시각장애인이 방향을 잘못 알고 다른 방향의 지하철을 타지 않도록 정보를 주는 것이고, 자신이 타는 위치가 몇 번의 열차 몇 번의 문인지를 알면 위치를 파악하고 내려서 어느 정도 걸어가서 방향을 잡거나 계단을 올라야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전화로 누군가를 만나 안내를 받는다면 어느 위치로 내리는지를 알려주어 편리하게 만나는 장소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가 엉터리이면 오히려 없는 것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화장실의 잠금장치의 경우, 밀거나 돌리거나가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용법이다. 그리고 잠겼는지 문을 살짝 흔들어 볼 것이다. 그러니 점자가 있는지 상상하고 만져보기는 쉽지 않다. 점자를 만져서 열리는 방향이구나, 닫히는 방향이구나 하지 않고, 문을 흔들어서 닫혔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더 쉬울 것이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점자까지 찍어놓은 잠금장치가 있다고 하니 신기하고 새로운 발견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빨리 닫아야 하는데, 언제 점자가 있는지 찾아보고 그 정보를 읽고 잠금장치의 사용법을 익혀 문을 잠그는 것은 시간적으로 적절하게 이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손가락 끝으로 점자를 아무리 읽으려 해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한글인가? ‘옡’이라고 적혀 있다니 말이 안 된다. 영어인가 ‘st?’ 이게 도대체 무언인가? 나는 화장실에 앉아서 10분 동안 무슨 점자인지 고민했다. 10분이 지나고서야 점자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자를 상하를 뒤집으니 ‘폐’라는 글자가 되었다. 개패를 말하는 것 중 닫힌다는 말이다. 좌측의 점자와 우측의 점자가 동일하다. 레버를 수평으로 놓으면 문이 잠긴다고 점자로 안내를 하려고 하니 모두 ‘폐’라고 쓴 것이다. 그렇다면 닫히는 것이 아닌 열린다는 점자 안내는 왜 없는가? 손으로 열심히 만져보았다. ‘폐’가 양옆에 있으니 상하에는 ‘개’라는 글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점자가 없었다.
사진을 찍어 나중에 확대해 보고 안 일인데, 점자가 있었지만 문드러져서 만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진으로 확인된 점자는 도저히 글자가 아니었다. ‘개’라는 글자의 뒤집힌 모양이기는 한데, 점자의 점과 점의 간격과 칸과 칸의 간격이 다른 표준 점자가 아닌 무늬만 점자였던 것이다. ‘개’라는 글자는 분명한데, 표준 규격도 아니면서 뒤집혀 있으니 점이 문드러져 있지 않았더라도 읽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폐’란 글자가 왜 뒤집혔을까? 벽을 이루는 부분이 좌측이고 문이 열리는 문짝이 우측에 있는데, 만약 서로 바뀐다면 글자가 바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너무나 비좁고 들어오는 통로에 소변기가 있어 겨우 피해서 들어와는 하는 곳이기에 문을 뒤집을 수 있는 공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룸센터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시공을 한 사람은 많은 잠금장치 중에서 점자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상당히 기뻤을 것이다. 잠금장치에 점자를 추가로 붙인 것이 아니라 주물과정에서 아예 점자를 일체형으로 찍어서 만든 것이니 장애인 다수 이용 건축물에 설치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선택은 감사할 일이다.
이런 좋은 의도였는데, 단지 점자를 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 좋은 의도에 신이 질투를 하여 완벽을 비껴가도록 한 귀신의 장난의 결과일 것이다. 고의적으로 엉터리 편의시설을 생색내기로 설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점자도 모두 정확한데 하필 화장실에서 점자가 엉터리가 되었으니 뒷간이라 점자도 뒷간처리가 되어 그런 것일까? 그래도 뒤처리가 잘되어야 하는 곳이 화장실인데 말이다. 참 편의시설은 어렵고, 완벽은 귀신이 늘 질투를 하여 허점을 만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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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서인환 iws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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