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와 유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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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와 유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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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2022, 06, 09 

이소정 소설가

얼마 전 나는 공감 원고에 대한 댓글을 하나 읽었다. 아직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거의 없어서 누군가 내 글을 읽었다는 것 자체가 마냥 신기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은 부끄럽고 두렵다. 댓글은 아주 짧았다. 요즘에는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라는 양성평등 단어를 쓴다는 말이었다. 글에서 나는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런 글에 차별적 단어를 쓴 것이다. 사실 나는 몰랐다. 몰랐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하는 자각에 부끄러웠다.

얼마 전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의 책 〈새의 선물〉이 100쇄 개정판을 출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번 개정판에서 작가는 전반전인 뼈대는 바꾼 게 없지만 앉은뱅이책상, 벙어리장갑, 곰보 아줌마 등 장애인이나 여성 비하 단어와 지금 정서에 맞지 않는 표현을 모두 바꿨다고 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에는 이런 말을 함부로 타인에게 했구나, 지금 사회가 좀 더 좋아져서 이런 걸 바꿀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이십 대에 〈새의 선물〉을 읽었다. 소설을 읽고 느낀 벅찬 감정이 지금도 남아 있다. 앉은뱅이책상이 있는 방의 여자아이를 기억하고 있다. 내게 앉은뱅이책상은 오래되고 소중한 물건처럼 읽혔다.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독자들이 바뀐 단어로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모르고 쓰고 있는 단어들을 찾아봤다. 성평등 언어 사전을 보며 그런 말들이 너무 많구나, 새삼 깨닫게 됐다. 자는 자녀로, 자매결연은 상호결연으로, 저출산은 출산율 감소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 저출생으로, 유모차는 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없나? 라는 문제의식에서 유아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로 권고하고 있다. 학부형은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말 대신 학부모로, 미혼은 비혼으로 미숙아는 조산아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한다.

나는 그동안 생각 없이 썼던 말의 차별과 폭력을 되짚었다. 그런 말들이 무의식중으로 얼마나 많은 편견을 허용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썼던 글들이 떠올랐다. 혹시 그런 단어나 문장이 없는지 돌아봤다.

나는 소설이 정직해야 한다고,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삶의 진실은 어쩌면 거짓 속에 더 살아있고, 진실의 어떤 면은 삐뚤어져 있고,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내 소설 속 인물이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라면 여전히 그런 단어를 쓰게 할 것 같았다. 오히려 그런 효과로 더 많은 것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어렵고 예민한 문제라서 소설 속에서 늘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뷰에서 은희경 작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문학은 사람을 읽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소설엔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 나오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여러 조건 속에서 겪는 일들을 읽다 보면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고, 문학은 모든 인간이 가진 다양하고 고유한 면을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소설적 상황의 특수성과 사회적 의미를 모두 고려해 작가의 소설이 퇴고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불가피한 소설적 선택이 아니라면 나는 글에서든 삶에서든 언제나 그런 말들을 적극적으로 쓰고 싶다. 상처 주지 않는 말. 차별이 없는 말, 평화가 깃든 말. 말에도 생명이 있어서 시대와 가치관에 따라 변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내뱉는 한마디 말이 생각보다 많은 걸 바꾼다고 믿는다.

<출처 : 부산일보 2022.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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