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모든 이의 비행은 설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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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모든 이의 비행은 설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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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모든 이의 비행은 설레어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도대체 언제까지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상류층 바다사자 부부 20쌍이 세렝게티로 단체 패키지여행을 왔다. 
일주일 간의 여행 일정을 만족스럽게 마친 그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탑승을 앞두고 있었다. 
그 무리에는 아프리카 사자 부부 한 쌍이 끼어 있었다.
그들은 얼마 전 은퇴를 한 노부부였는데 평생소원이었던 갈라파고스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버스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버스 티켓 요금은 상당히 비쌌지만 세렝게티와 갈라파고스 섬을 연결하는 교통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기에 고민 끝에, 
만기를 한 달 앞둔 저축 통장을 깨고 세렝게티행 티켓을 산 것이었다. 

바다사자들 무리에 끼어 처음으로 먼 여행을 떠나는 사자 부부는 창 밖의 모든 풍경이 새롭고 신기했다. 
하지만 바다사자들이 노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듬성듬성하고 흐트러진 갈기 다발은 흉해 보였으며 진흙과 모래가 묻은 털에서 먼지가 날렸다. 
그리고 쓸데없이 길어 보이는 꼬리에서는 코끼리 분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식사 때가 되어 바다사자들이 광광버스에서 제공하는 맥반석 오징어 구이가 후식으로 곁들여진 청어 요리를 먹을 때 
자부부는 도시락 대신 직접 챙겨 온 가젤 뒷다리 육포를 꺼내 먹었는데 바다사자들은 누린내 때문에 식사 때마다 창문을 열어야 했다. 
여러모로 그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지만 버스 티켓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합법적인 권리에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꼬박 한 달이 걸려 태평양에 도착했다. 이제 섬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이들이 하차했다. 부푼 가슴을 안고 버스에서 내린 사자 부부는 관광버스를 함께 타고 온 안내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우리가 탈 보트는 어디에 있소?"
안내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당신들을 위한 보트는 없소. 여기서부터 헤엄 쳐 가야 하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여행 티켓 계약서에는 버스를 이용하는 모든 승객들에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단을 제공하겠다고 적혀있었는데!"
"만석이다 보니 보트를 실을 공간이 없었소. 근데 원래 사자들도 헤엄 좀 치지 않소?"
"코딱지만한 오아시스에서 물장구치는 수준이지, 사막에서 평생 살아온 우리가 어떻게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넌단 말이오?!"
"나도 유감이지만 방법이 없소. 나무판자라도 구해 헤엄쳐 가시든지 아니면 
여기서 기다리다가 섬에서 나오는 다음 편 세렝게티행 버스를 타고 돌아가시든지. 참고로 다음 편 버스는 일주일 뒤에 있소."

이 이야기를 어린이에게 들려준다면 어떨까? 
아마 100이면 100명의 아이가 사자 부부에게 감정이입해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까?! 
어린아이도 느끼는 부당한 처사가 아직도 세계 곳곳에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2023년 10월 30일(현지시각), 캐나다 최대의 정규 항공사 에어 캐나다(air Canada)가 휠체어 이용 승객에게 
기내용 휠체어를 제공하지 않아 승객이 비행기 출입구까지 기어간 사건이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해당 승객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사는 뇌성마비 장애인(로드니 하진스)으로 부인과 함께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을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를 탔다가 이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기내에서는 좁은 통로 때문에 일반 휠체어나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지 못해 기내용 휠체어를 이용한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부부는 항공사 측으로부터 '휠체어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니 출입구까지 알아서 가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부는 처음에 '농담'인 줄 알고 웃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비행이 있다(그러니 어서 나가라)'는 항공사 측의 노골적인 재촉을 듣고 '농담'이 아님을 깨달은 그는 
결국 혼자 바닥으로 내려가 상체의 힘으로 하체를 끌며 기어 나갔다.
이게 복지국가라고 자랑하는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도 놀랐으나 여러 매체가 전하는 보도 기사들을 읽을수록 놀란 입은 점점 더 벌어졌다. 
기내용 휠체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해당 사실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전하는 에어 캐나다 관계자의 태도와 대응방식이었다.
에어 캐나다는 제3의 업체에게 기내용 휠체어 서비스를 맡기고 있었는데 어떤 문제로 인해 휠체어가 공급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대행업체의 잘못이든 당사의 실수이든, 그 책임 소재를 떠나 에어 캐나다는 당사를 이용하는 모든 고객이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부득이하게 휠체어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걸을 수 없는 고객에게 '기어서 나가'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입구까지 바닥을 기어가는 일은 이동권 이전에 인권이 짓밟힌 비참한 경험이다. 
로드니 씨가 혼자 힘들게 기어가는 동안 힘을 보태는 사람은 다리를 밀어준 그의 부인 밖에 없었다. 
10명이나 되었다는 항공사 직원들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오랫동안 장애인 권리 투쟁의 핵심 어젠다였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갈라파고스행 티켓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그 티켓을 가진 모든 승객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사회의 당연한 의무다. 
이동권은 교통수단 접근의 기회와 방식 선택의 자유 이 외에도, 
주변 타인들과의 원활한 상호작용,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정신적으로 불편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너무 자주 잊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비용과 시간적 측면에서 기내용 휠체어보다 훨씬 용이하게 제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농담'이어야 했고, 웃음으로 끝났어야 했을 이 사건은 세렝게티에서 휴가를 보내는 바다사자만큼이나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실화'가 되고 말았다. 
이 일로 갖게 되었을 그들 부부의 평생 지우지 못할 마음의 상처는 나무판자를 입에 물고 태평양을 건너려는 사자 부부의 슬픈 실패를 예상하는 것보다 쉽게 상상된다. 

모든 이는 안전하고 불편하지 않은 이동권을 예외 없이 보장받아야 한다. 
평생 동안 갈라파고스 여행을 갈망했던 늙은 사자 부부의 꿈과 더불어, 비행하는 모든 이의 설렘을 어느 누구도 망칠 권리는 없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칼럼니스트 황서영 no.more.thinking.and@gmail.com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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