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섬진강기차마을(2015년 열린관광지선정)
증기기관을 차량에 응용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영국 등에서 시도되었으나 1804년 R.트레비식이 철제궤도 위를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시작(試作)하였다. 또 1814년 G.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의 시작에 성공하여 1825년에 만든 로커모션호는 이해에 개업한 세계 최초의 철도 스톡턴∼달링턴 철도에서 실용화에 성공하였다. 이 기관차는 약 90t의 객·화차를 견인하여 시속 16km의 속도로 주파하였다고 한다. 그후 1829년 리버풀 맨체스터 철도의 개업을 앞두고 기관차경주가 행해졌는데 스티븐슨과 그 아들이 만든 로켓호는 최고시속 46km를 내어 우승함으로써 증기기관차의 우수한 성능과 실용가능성을 일반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 증기기관차는 각국의 철도에 채택되어 장거리주행을 위하여 석탄과 물을 다른 차량에 적재하여 견인하는 텐더 기관차가 출현하였으며, 속도를 증가하기 위하여 동륜(動輪) 지름을 크게 하는 등의 시도가 이루어져 모두 실용화되었다. 기관차의 대형화는 19세기 말까지 크게 진척됨에 따라 견인력도 점점 증대하였다. 한국의 증기기관차는 1889년 주미대리공사 이하영이 철도모형을 궁중에서 관람시켰으며, 1899년 서울∼인천 (경인선) 개통 때 미국 브룩스에서 제작한 모걸(Mogull)형 탱크기관차가 등장한 것이 최초이다. 그 후 1905년 푸러형 탱크기관차·터우형 텐더기관차를 미국에서 수입하였고, 1911년에는 아메리칸형 텐더기관차를, 1914년에는 과열증기기관차를 도입하였다. 1919년에는 미카형, 1921년과 1923년에는 파시형을 미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하였고, 1915년부터 1919년 사이에는 바티형과 터우형을 남만주철도(南滿洲鐵道)의 사허공장[沙河工場]에서 제작한 것을 사용하였다. 국내에서는 1927년 경성공장(현 서울공작창)에서 처음으로 터우형 2량을 제작하였고, 그후 8·15광복 전까지 파시형·미카형 기관차를 소량 만들어 왔다. 광복 후에는 증기기관차를 제작하지 않았으며 디젤기관차로 대체되었다.
(전남곡성기차마을)